-
74,603 Step, 50Km버킷리스트/(Camino)산티아고 순례길 2020. 9. 9. 20:14
정말 대단한 날이었다.
아마 이때까지는 산티아고까지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거 같다.
온전히 나를 위한 여행을 경쟁과 비슷하게 생각했다니 정말 한심한 생각이었다.
아직 젊은 나이지만 지금껏 살아오면서 항상 누군가와 경쟁을 하고 살았다.
세계 어디든 마찬가지겠지만 한국의 경쟁 사회가 유난히 과하다는 건 누구나 알 것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경쟁에서 이겨야만 더 좋은 대우를 받고 더 좋은 학교를 가고 더 좋은 직장을 갖고
어쩌면 너무 당연한 것을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거일 수도 있다.
우리는 해가 뜨기도 전에 출발했다.
다음 마을인 로스 아르코스( Los Arcos )까지는 20여 Km였지만 50Km 거리에 있는 로그로뇨( Logroño )까지 가기로 했다.
이유는 며칠 전까지 같이 걸었던 스타트 멤버들과 합류하려 했던 게 가장 컸던 거 같다.
출발하고부터 고도가 올라가고 있단 걸 느꼈다.
높은 산은 아니었지만 얼마나 힘든 하루가 될지 예상할 수 있었다.
출발은 같이 했지만 걷다 보니 자연스럽게 셋 다 따로 걷고 있었다.
앞 뒤로 멀리 봐도 아무도 보이질 않았다.
오기전에 인터넷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알아봤을 때 봤던 화살표인데 바닥에 누가 돌로 만들어 놓았다.
그 누구도 저걸 발로 차거나 흐트러뜨리지 않는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아직도 저 모양 그대로 남아 있을 것 같다.
누군가는 신던 신발을 올려놓고 지나갔고
누군가는 입던 옷을 두고 갔다.
얼마나 오래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나 말고는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저런 석탑을 보면 나도 모르게 자연스레 돌을 올려놓게 된다.
물론 소원 비는 건 필수.
걸을만했다. 힘들었다.
로그로뇨까지 3시간 정도 남은 거리에서 동훈이를 잡았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기석이도 만났다.
우리는 같이 출발해서 자연스레 멀어지고 5시간 만에 자연스레 다시 만났다.
로그로뇨 ( Logroño )
마을이란 찾아볼 수 없는 도로.
그렇게 다시 만나 한 시간을 더 걸은 후에야 마을이 보였고
그곳에서 우리는 엄청난 고민을 했다.
목적지인 로그로뇨까지 10Km 남았는데
택시를 타자. 여기서 자고 내일 따라잡자.
엄청난 고민이었다.
택시를 타는 건 나 자신한테 부끄러운 일인 거 같았다.
결국엔 기석이의 만류로 우리는 남은 10Km를 힘겹게 걸었다.
피레네 산맥을 올라갈 때도 쓰지 않은 등산스틱을 이 날 처음 사용했다.
로그로뇨까지 막바지 길은 5Km 이상이 비포장 도로여서 힘들었는데
거의 다 왔다는 기대감에 우리는 더 빨리 걸었다.
그리고 우리의 페이스메이커까지 우리에게 힘을 보태 주었다.
해 질 녘이 돼서야 로그로뇨가 보였다.
알베르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두운 상태였고
다시 만난 에마, 로빈슨, 채연이 가족들의 환영을 받으며 재회를 기뻐했다.
ㅋㅋㅋ불과 이틀 떨어져 있었는데 얼마나 반갑던지..
그리고 에마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마트에서 장을 보고
가벼운 술자리로 하루를 마무리.
사실 술자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알베르게에 들어가서 새로운 순례자 스위스에서 온 패트릭과 한 잔 더하고
에마의 인생 이야기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이날이 산티아고 순례길 중 가장 힘들었던 하루가 아닐까 싶다.
정말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고, 택시 타려는 걸 말려준 기석이에게 고맙다.
(2019.02.26)
'버킷리스트 > (Camino)산티아고 순례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Thanks to Patrik (0) 2020.09.11 Together Again (0) 2020.09.10 Bonjour, Manoah (0) 2020.09.08 Walk Again (0) 2020.09.07 Break Time In Pamplona (0) 2020.09.06